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행크 애런 (문단 편집) == 은퇴 후 == 은퇴 후 1982년 [[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]] 투표에서 '''97.83%'''라는 '''역대 9위'''의 높은 득표율로 헌액되는 영광을 얻었다.[* 당연하겠지만 첫턴 입성이기도 하다. 참고로 역대 명예의 전당 헌액자 득표율 1위는 [[마리아노 리베라]](100%), 2위는 [[데릭 지터]](99.7%), 3위는 [[켄 그리피 주니어]](99.32%), 4위는 [[톰 시버]](98.84%), 5위는 [[놀란 라이언]](98.79%), 6위는 [[칼 립켄 주니어]](98.53%), 7위는 [[타이 콥]](98.23%), 8위는 [[조지 브렛]](98.19%)이다. 10위는 [[토니 그윈]](97.61%), 11위는 [[랜디 존슨]](97.27%), 12위는 [[그렉 매덕스]](97.19%)이다.] [[배리 본즈]]가 그의 통산 홈런 기록을 깨려고 할 때, 처음에는 그를 지지했지만 BALCO 스캔들이 터진 후에는 지지를 철회했다. 홈런이 기록이 깨질 때도 현장에 있지 않고, [[https://youtu.be/eM-k5_FzlqQ|영상]]으로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.[*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. 아무리 본즈라도 홈런 못치는 날도 있는데, [[윌리 메이스]]처럼 대자-대부 같은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행크 에런 본인은 본즈가 활동한 자이언츠 프랜차이즈와 겹치는 속성이 전혀 없기도 하니... 홈런 칠 때까지 매경기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. 오히려 타이밍이 안 맞아서 본즈가 원정경기에서 756홈런을 쳤더라면 에런의 그 영상 메시지조차 방송되지 못할 뻔 했다.] 그러나 죽기 얼마 전 인터뷰를 했을 때는 약물 문제가 있지만 본즈는 홈런왕이 맞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. 은퇴 후에는 특별한 직책 없이 야인으로 지내다가 [[테드 터너]]가 [[애틀랜타 브레이브스]]의 구단주가 된 후 1976년 애틀랜타의 고문 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구단 경영에 참여했고, 1980년부터 구단이 터너의 손을 떠난 이후로도 한동안 구단 부회장을 역임했다. 테드 터너의 방송국인 [[TBS(미국)|TBS]]에서도 부회장이자 이사로 등재된 적이 있으며며 개인적으로 조지아 주에서 여러 개의 자동차 딜러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. 그의 등번호 44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[[밀워키 브루어스]]의 영구 결번이며, 애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타자에게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[[행크 애런 상]]을 수여하고 있다. 보다 자세한 애런의 이야기를 한글로 읽고 싶으신 분들은 김형준 기자의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7&oid=224&aid=0000001112|레전드 스토리]]를 참고하시길. || [[파일:external/67.media.tumblr.com/tumblr_obwg8hrBOy1sqk8veo1_1280.jpg|width=500]] || [youtube(U0OW_7ud8fw)] 한편 [[1982년]]에 [[KBO 리그|한국프로야구]]가 창설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. 두 번의 방한 모두 [[삼성 라이온즈]]를 운영하던 [[삼성그룹]]의 초청으로 이뤄졌는데[* 당시 애런이 입었던 유니폼에 [[제일제당]]이라는 회사명이 써 있는 것이나 팬 사인회를 [[신세계백화점 본점]]에서 한 것은 제일제당과 신세계가 당시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이다. 두 회사는 1990년대 초에 각각 삼성에서 계열분리돼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.] 1982년 8월 내한 때는 [[동대문야구장]]과 [[숭의야구장]]을 방문해서 선수들에게 타격 지도를 하는가 하면 [[신세계백화점 본점]]에서 팬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. 당시 2시간의 사인회를 갖는 동안 무려 2만명의 어린이 팬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. 10월에는 [[애틀랜타 브레이브스]] 산하 마이너리그 선발 팀을 이끌고 [[시카고 컵스]]의 레전드 [[어니 뱅크스]], [[빌리 윌리엄스]] 등과 함께 내한해서 친선 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. 이 때 경기 전 행크 애런이 [[이만수]], [[김우열]] 등 대한민국의 대표 홈런타자들과 [[동대문야구장]]에서 홈런 더비를 했는데 나이 50살을 바라보는 행크 애런의 타구 비거리와 질은 이만수같은 대한민국 슬러거를 압도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했다. 참고로 스파이크를 안 신은 상태에서 저런 타구를 쳐낸 것이다. 홈런 더비 직전 그를 만났던 이만수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고 말했다. 애런은 일본야구의 영향으로 다운스윙을 하고 있던 이만수에게 타격지도를 해주며, 다운스윙을 하면 팔로스루가 잘 안 되니 레벨스윙을 하라고 권했고, 히팅포인트를 왼발 앞에 두고 타구를 띄워야 한다고, 공을 맞힌 후 마지막엔 배트끝이 왼쪽 어깨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. 이만수는 애런이 "너는 왜 네 타구가 안 뜬다고 생각하느냐"고 묻자, 한국 지도자들의 지시만 받고 '왜?'라는 질문을 받은 적 없었던 자신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[* 당시의 사회 풍조상 상급자, 특히 지도자들로부터 지시를 받은 뒤 하급자가 그 이유를 물으면 건방지다고 상급자가 지적하던 시절이었다.] 회고했다. 1982년엔 홈런 4위를 기록했던 이만수는 애런의 조언 덕분인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게 된다. 내한 당시 받은 초청비 중 일부를 주한미군을 위해 써 달라고 기탁했는데 본인이 한국 초청을 받고 방한을 결심한 순간 [[6.25 전쟁]] 당시 '최후의 4할타자' [[테드 윌리엄스]]를 비롯한 몇몇 미국 야구선수들의 한국 파병 광경이 떠올라서 기부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